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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왕실문헌인 『列聖誌狀通紀』의 성격을 소개하고, 그곳에 실린 왕과 왕비 입전 碑誌文들을 살펴보았다.『열성지장통기』는 조선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들에 관한 공식 산문들을 수록한 문헌인데 여기에는 行狀, 碑誌, 竹冊, 玉冊, 諡冊, 敎命文, 樂章, 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이 가장 풍부한 이본은 가장 후대에 증보된 장서각소장 23책본『列聖誌狀通紀』이다. 『열성지장통기』는 조선왕조의 권위와 정통성을 밝히고 후대 왕실에게 기록으로 남기려는 의도로 편찬된 것이며, 왕실문학의 중요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왕과 왕비의 일생을 기록한 碑誌文들은 이 문헌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열성지장통기에 수록된 비지문의 주인공들은 26인의 왕과 27인의 왕비이다.비지문에 나타난 왕과 왕비들의 형상은 전형적인 형식에 따라 서술되었으며 이러한 형식적 측면은 조선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주장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왕에 비해서는 왕비들에 대한 서술방식이 좀더 유연하다. 그리고 조선 전기에 비해 조선 후기는 서술이 더욱 자세해 지고 핍진해 지며 형식적 고착성을 조금씩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왕의 형상에는 堯舜文武周公이나 孔子와 같은 상고 중국의 성인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국왕상으로는 세종이 특히 부각되었는데 그는 ‘동방의 요순’과 ‘주공, 공자’에 견주어졌다. 이러한 이상적 군주의 형상은 큰 변화가 없이 하나의 전형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나타난 정조의 인물 형상은 중국 성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조 자체를 성인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어 주목할 만 하다. 조선시대의 이상적인 왕비상은 왕의 형상에 비해 후대로 가면서 변모된 모습이 잘 나타나고 훨씬 다양하게 형상화된다. 초기에는 중국의 도산과 태임, 태사 등의 전형을 따르다가, 후대로 가면 궁중 생활의 현실적 어려움을 상세하게 나타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국왕으로는 세종이, 왕비로는 인현왕후가 가장 이상적인 인물형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왕과 왕비 모두 성인의 형상을 지향하며 서술되고 있는데 그 성인은 ‘마음의 성인’이다. 즉 백성들의 희노애락의 과불급을 해소하고 중화시킬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인의 형상은 단순히 형식적인 수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왕과 왕비는 실제 성인을 닮아야 한다는 안팎의 요청을 보여주는 것이다.


In this article I studied the Yeolseongjijangtonggi, and focusing on the character bijimun 碑誌文 deal with King and Queen. In this Yeolseongjijangtonggi, recorded haengjang 行狀, bijimun 碑誌文, various chaekmun 冊文, kyomeongmun 敎命文, akjang 樂章, jemun 祭文. Yeolseongjijangtonggi was edited for orthodoxy and authority of Joseon Dynasty. For this reason, It is importance material. Particularly, most important of this, is the bijimun that deal with the whole life of King and Queen . Look around these bijimun, The characters of King and Queen ware described by typical style, and this formal side is a one mode for justify the orthodoxy and authority of Joseon Dynasty. But the descriptive style about of Queen is soft compare the about of King. And, as time as go by, The description became in detail, realistic. And then, more and more, get out of formal adherence. On the ideal looks of King in Joseon Dynasty, The ancient times Chinese holy man like as Yo 堯, Sun 舜, Mun 文, Mu 武, Jugong 周公, Kongja 孔子 were reflected as ideal King. The typical model of like this pattern in Joseon Dynasty was a King Sejong 世宗. He was considered as 'YoSun 堯舜 of an eastern country', Jugong 周公, and Kongja 孔子. But reached the latter period of Joseon, The noteworthy character of Jungjo showed up as holy man itself. In Queen's case, Tosan 塗山, Taeim 太姙, Taesa 太 ware presented as ideal looks of Queen, in early time of Joseon Dynasty. And, as time goes by, The difficulty of court life and the surmount of this were manifested realistically. Also, Inhyeonwanghu 仁顯王后 presented to representative ideal Queen in Joseon Dynasty. In this way, The characters of King and Queen were described by typically holy man. The holy man was the holy man of heart. Namely, untied and neutralized the feeling of all people. This character of holy man demanded practically, not simply described as a modif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