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이 논문은 齊 朴珪壽(1807 ~ 1877)의 『鳳韶餘響』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박규수는 燕巖 朴趾源의 손자로서 19세기 漢詩史에서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붕소여향』은 7언 절구 100수로 된 宮詞로, 박규수의 초기 한시를 대표하는 力作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저네에 대한 정밀한 독해 위에서, 창작 배경을 이루는 박규수의 삶과 시대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한편, 唐나라 王建 이래 중국과 조선에서 창작되어온 궁사의 전통에 비추어, 『붕소여향』의 예술성과 문학사적 의의를 밝히고자 했다.박규수는 순조 29년(1829년) 국정을 대리하던 孝明世子의 하명에 따라 조선조 역대 임금들의 행적을 예찬한 『붕소여향』을 지었다. 이 작품은 왕조의 번영을 상징하는 ‘日出’이미지로써 작품의 서두와 결미가 상호 조응케 하여 짜임새를 갖추었으며, 절구 1수마다 문헌에 근거하여 자상한 주를 붙이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주체 면에서 『붕소여향』은 임금의 修身上의 덕목을 예찬한 시와 治國上의 업적을 예찬한 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또한 ‘萬家’와 ‘萬川’위에 비추이는 ‘明月’의 이미지로써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박규수는 외척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효명세자의 염원에 호응하여, 국정을 주도하면서 신민들에게 덕정을 베푸는 군주상을 제시하곡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붕소여향』에는 尊明排淸主義와 性理學 사상이 드러나 있어 당시 박규수의 사상적 지향을 알 수 있다.『붕소여향』은 다채로운 소재와 화려한 수사법을 구사하여 왕정을 대평성세로 찬양하고 있는 점에서 궁사다운 특색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궁사들이 이를 통해 궁중의 향락을 표현하는데 주력했음에 반해, 이 작품은 그 같은 소재와 수법을 어디까지나 주제와 사상 전달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리하여 교훈적인 주제와 사상성을 생경하게 노출하는 대신 궁사의 특징을 살려 시로서의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붕소여향』은 향락적 작품을 止揚하고자 했던 허균의 「궁사」를 계승하면서 예술적으로도 빼어난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 하겠다.


A study on Bongsoyeohyang by Park, Gyou-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