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예로부터 풍류적인 지식층이나 시인 문인들은 흔히 명산대찰 명승고적, 혹은 어떤 특별한 지역을 참관 유람하면서 그들의 체험 견문 감흥을 시문으로 남겨서 소위 紀行詩文이라는 작품군을 성립시켰다. 특별히 등산을 한 체험과 감회를 산문체로 기술하여 남겨놓은 遊山記 혹은 遊山錄은 山行記錄에 속하는데, 조선시대에 출현한 작품 수량은 약 560편 정도나 된다고 한다. 최근 遊山記문학 연구가 활발하여 금강산을 비롯한 지리산 청량산 소백산 묘향산 삼각산 천마산 속리산 등을 등정한 체험을 기술한 遊山記의 작품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업적이 있게 되었다. 그 중에는 계룡산 遊記 작품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인데, 그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자못 미비한 형편이다.필자는 몇 년 전부터 계룡산 관련 문헌을 탐색하여 그 일부 자료를 이미 학계에 소개한 바 있는데,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계룡산 遊記로서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로는 吳再挺(1641 ~ 1709)의 「遊鷄龍山錄」 宋相琦(1657 ~ 17230의 「遊鷄龍山記」 南夏正(1678 ~ 1751)의 「鷄龍記行」 李仁植(1856 ~ 1912)의 「遊鷄龍山記」 林沔浩(純祖 高宗年間)의 「遊鷄龍山錄」등의 한문작품과 光山 金氏(1842 ~ 1917)가 지은 국문필사본 「거룡산유산녹」을 꼽을 수 있겠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6편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계룡산 遊記에 나타난 옛 사람의 유산감흥과 관심형태를 고찰해 보고, 아울러 조선시대 遊山記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6편의 유산기 내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계룡산이 지리산이나 금강산처럼 대단히 험준하고 웅장한 산세를 갖추고 있지는 않아도, 작자들은 계룡산 도처를 仁者樂山의 기분으로 돌아다니면서 산세의 위용과 곳곳에 산재한 암자 시시각각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풍광 역사 유적 등을 통하여 그들의 유흥과 감회를 유감없이 나타내면서 산행에서 얻어진 일련의 체험을 유산기 문장으로 남기게 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들은 僧俗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新都 招魂閣등의 유적지에 대한 역사적 悔恨을 가지고 있지만, 작자의 신분상 治者의 관점으로 산행하거나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았던 바, 이런 점은 계룡산 유기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면모라고 보아진다. 여하튼 작자들은 계룡산 산행 중에서 체득될 수 있는 유람의 정취를 소박하게 표현하여 조선시대 유산기 산문장르의 명맥을 지속적으로 지켜온 성과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충청지역의 유산기 문학의 양상을 충분히 발휘하여 향토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게 하였으며, 아울러 후대 사람들에게 山中之樂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A Study on the Excursion Records of the Kyeryong 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