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close

李德懋가 26세(1969년)때 『耳目口心書』6편을 이룬 뒤 朴趾源이 그 책을 빌려 다 열람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해학적 내용의 尺牘을 교환하였다. 그리고 박지원은 『산해경』東荒經 補經을 짓고 이덕무는 주(注)를 지었다. 『산해경』보경과 주는 18세기 지식론의 한 단면을 드러내주는 戱文으로, 한문산문에 訓學의 방법을 轉用하는 전통을 형성하였다. 또한 그들의 척독 교환은 知人들 사이의 흉허물없는 對面인 晤言을 보완하고 촉발하는 계기로서 기능하였다.이덕무는 ‘귀로 들음(耳聞)’을 중시하였는데, 그것은 ‘道問學’과 ‘尊德性’의 두 공부 가운데 ‘도문학’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박지원이 이덕무의 識解博聞强記를 일정하게 평가한 것이나, 그 자신도 객관사실의 해부적 묘사와 실증적 분석에 중점을 두었던 것도 같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희문을 통하여, 그들이 인간과 역사(현실)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博學의 가치를 재평가한 지향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산해경』등 자부의 서적들을 널리 읽음으로서 사유세계를 확장하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Regarding the exchange of humorous letters between Pak Chi-won and Yi dok-mu- Humanistic meaning of perspective on learning, humorous diversion of commentaries, and exchange of letters presented in Pak Chi-won's <Sanhaijing> 'Donghwangjing' 'Bogyong' and Yi Dok-mu's 'Chu : commentary'Sim Kyung-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