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溪 尹定鉉(1793~1874)은 19세기 전반기에 추사 김정희, 환재 박규수 등과 학문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하였던 당대 최고 수준의 문인이자 학자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침계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침계의 교유관계에 있어 특징적인 것은, 그가 여항인, 서얼, 서북인과 같이 소외된 인사들과 매우 친밀하였다는 점이다. 침계는 이들의 능력이 사회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을 마음 아파하였으며, 이들이 문학을 통해서나마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후원하였다. 그런데 침계는 고증학적 학문경향을 지녔던 인물이었기에 학문의 ‘전문성’을 매우 중시하였고, 나아가 문학도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평소 지론에 비추어 볼 때, 여항인 서얼들의 문학활동은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되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문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러한 점을 침계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침계는 이들의 문학이 지닌 ‘전문성’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사대부 문학과는 변별되는 독자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문학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문학론은 중세 성리학적 문학론과는 성격이 매우 다른 것이기에, 그 비평사적 의의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침계는 지역적인 차별을 받는 서북인사들을 위한 묘지문자를 다수 창작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이들의 소외된 처지를 위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 침계는 서북문인에게 음운학 등의 고증학을 전수하기도 하였다.이와 같이 침계가 여항인 서얼 서북인들과 함께한 문학과 학문 활동에는 19세기 문학사와 학술사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Chimgye Yoon, Jung-hyun(尹定鉉)(1793~1874) was the highest level literary man and scholar having led academic and literary activity along with Kim, Jung-hee(金正喜) and Park, Gyu-soo(朴珪壽) at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What is characteristic in Chimgye's social intercourse was that he was very intimate with estranged figures such as Yeohangin(閭巷人), Seoeol(庶孼), Seobukin(西北人). Chimgye felt sad about the state these people's capabilities were not fully utilized, and sponsored them that they could find out livehood rewards. Then Chimgye with the tendency of the study of old documents(考證學) stressed 'the profession' of learning, futhermore and had a thought that he should devote himself to literature. In the light of this cherished opinion, Yeohangin's and Seoeol's literature was very wonderful. Alienated from the society, they concentrated their all energy and ability on literature, for which Chimgye regarded as good. Thus Chimgye strived to surface that point and grant an independent character distinctive from high officials' literature. But the literary theory putting emphasis on 'the profession' of literature is very different from Sung Confucian literary theory(性理學的文學論) in the medieval age, so its significant meaning in the history of criticism is not negligible. And Chimgye created many inscriptive letters for locally discriminatively treated North-west figures, which is kind of comforting their alienated position. Also Chimgye handed down to the very able talent called Lee, Jo-heon(李祖憲) the study of old documents such as phonetics. Likewise, literature and academic activity Chimgye sharing with Seoeol's and North-westerners contains to be noted in the 19th century history of literature and arts and sciences.